할 말은 하고 살자 ① 임신 안 한 여자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지 말자

할 말은 하고 살자 ① 임신 안 한 여자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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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

지하철에는 임산부 배려석이 마련되어 있는 칸이 있다. 좌석의 바닥과 벽면에 분홍색으로 ‘이 자리는 임산부를 위한 자리입니다’라고 쓰여 있어 육안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임산부 배려석이 만들어질 때부터 이 좌석이 임산부를 제외하곤 아무도 앉으면 안되는 좌석인지 평소엔 다른 사람들도 앉아 있다가 임산부가 탑승했을 때 비켜주면 되는 좌석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지금도 그렇다. 어쨌든 임산부 말고 다른 사람들이 절대 앉으면 안 된다는 법적인 구속력은 없다. 사람들의 적당한 눈치와 자율에 맡기는 분위기다.

지하철을 자주 타다보니 사람이 붐비지 않는 이상 임산부 배려석은 비워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간혹 누가 봐도 임산부가 아닌 사람들이 이 좌석에 앉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처음엔 속으로 ‘저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좀 들었을 뿐 달리 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임산부 배려석과 관련해서 인터넷상으로 올라오는 경험담을 보고 나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

온라인에는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 임산부석에 당당하게 앉는 걸 보고 눈살이 찌푸려졌다는 식의 후기가 꽤 있다. 흥미로운 점은 임산부석에 앉은 성별이 대부분 남성인 경우였다. 할아버지, 아저씨, 심지어 신체 건장한 2,30대 남자가 임산부석에 앉은 걸 보고 속으로 욕이 나왔다는 것이다.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어서 당사자에게 직접 얘기는 안 하고 온라인에 제보한 모양이다.

이걸 보고 든 생각이 있다. 왕복 포함 일주일에 최소 지하철을 10번 이상 타는 나로서는 이런 후기가 영 불편했다. 우선, 제보가 허위가 아니라는 가정하에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남자는 비도덕적인 행동을 했다는 데 동의한다. 많은 주위 사람들이 눈치를 줬을 게 분명해 보이고, 굳이 모르는 사람과 언쟁을 하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있었을 것이다. 임산부는 어쨌든 여성인데 남성이 그 자리에 앉았다는 건 아무리 그럴싸한 이유가 있더라도 납득하긴 힘들다.

다만, 내 경험상 임산부 배려석에 거리낌 없이 착석하는 사람들은 비임산부인 여자가 훨씬 더 많았다는 점이다. 정말 이따금씩 남자 노인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 경우는 있지만 20대~50대 남자가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경우는 한 번도 못 봤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남의 눈치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철면피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임산부 배려석은 양쪽 측면에 있다보니 좌우 모두 남들과 살을 부대낄 필요가 없는 개꿀자리다. 나는 지하철 좌석이 한산할 때 임산부 배려석 바로 옆에 앉는다. 임산부석에는 임산부가 아닌 이상 앉을 사람이 없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임산부가 아닌 사람들이 내 옆 좌석, 그러니까 임산부석에 앉았던 경우가 꽤 많았다. 그 중 남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80프로 이상이 폐경기가 한참 지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50대 이상의 여성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경험은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거의 일치했다. 임산부 배려석은 어느덧 자연스럽게 ‘여성 전용 좌석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임산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앉는 여자들이 많다. 사실, 젊은 여자가 거기에 앉으면 임산부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누가 봐도 주름이 자글자글한 중년 이상의 여성이 임산부 배려석에 당당하게 않으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불편하다. 만약 남자가 임산부 좌석에 앉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이라면 임산부가 아닌 여성이 임산부석에 앉을 때도 똑같이 불편해야 정상이다. 유독 남자가 임산부석에 앉을 때만 온라인 경험담이 올라오는 것은 그가 비임산부라서가 아니라 단순히 성별이 남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맘카페에 가보니 ‘지하철 임산부석에 비임산부가 앉아있으면 양보해달라고 하시나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있었다. 댓글이 수십 개가 달려있었다. 한번 유산한 뒤로 꼭 양보를 요청한다는 댓글도 있었고, 민망해서 요청을 안 한다는 댓글도 있었다. 어쨌든 비임산부인 사람들이 임산부석에 앉아있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가 알게 모르게 임산부는 주위에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한 지 얼마 안 되는 임산부는 배가 부르지 않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임신 유무를 판단할 수 없다. 맘카페에서 이 글을 보고나서는 혹시 있을지 모를 임산부를 위해 임산부석은 그냥 비워두는 게 맞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그래서 내 결론은 이렇다. 지하철 임산부석은 남자는 물론이고, 비임산부 여자들도 앉지 말자. 임산부석은 임신한 여자를 위한 좌석이지 여성 전용 좌석이 아니다. 약자를 위해 매너 있게 살고, 지킬 건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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