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폭탄 투여된 후의 일본, 너무 잔인해서 비공개 시체더미

원자폭탄 투여된 후의 일본, 너무 잔인해서 비공개 시체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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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투여 후 일본

원폭 투여 후 일본

1945년 일본의 패망은 이미 결정되었다. 일본의 미친 공격은 연합군의 막대한 손실을 자아냇다. 그중 미국의 피해가 가장 컸는데 오키나와에서만 8만명이 사망했다. 만약 일본본토에서 전쟁을 치뤘다면 연합군의 손실은 100만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원폭 투여 후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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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6일 8시, 3대의 B – 29 폭격기는 히로시마시에 ‘리틀보이’ 원자폭탄 TNT1.5만톤에 해당하는 것을 투여했다.. 폭탄으로 생긴 연기버섯은 약 18000미터까지 솟아올랐는데 이것은 두개의 쵸몰라마봉을 합친 높이에 육박하다.

원폭 투여 후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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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 투여 후 히로시마의 광경은 처참했다. 폭발하는 순간에 나오는 불은 수천명을 실명시켰고 섭씨 6000도의 고온은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원폭 투여 후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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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첫번째 원자폭탄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일본은 미국이 한대의 원자폭탄만 보유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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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9일 일본의 나카사키에는 두번째 원파폭탄 “Fat Man”이 투여됐다. 당시 나카사키 현에는 27만명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폭탄으로 6만명이 사망했다. 그 후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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