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 탐험]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On Liberty , 1859)

[명저 탐험]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On Liberty ,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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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을 대표하는 공리주의 철학자이자 자유주의의 대부 '존 스튜어트 밀'

▲ 영국을 대표하는 공리주의 철학자이자 자유주의의 대부 ‘존 스튜어트 밀’

 

‘시공간을 초월해 읽는 이들의 영혼을 울릴 것’. 이것이야말로 고전이 갖추어야 할 최대 덕목 아닐까?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에 세상에 나온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오히려 당대의 영국인이나 독일인, 프랑스인들보다 2017년을 살아가는 현대의 한국인들에게 더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유’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나 뒤떨어지는 사람과 만나 대화를 나누다보면 답답한 마음에 그에게 자유론을 강제로 100번을 읽게 만들고 싶다. 그러나 필자의 이러한 생각 역시 밀의 자유론에 반하는 태도이다. 밀에 따르면 우리 중 누구도 명백한 위험이 확실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타인에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강제할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지난 4년 간의 대학생활을 반추해 보았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다. 국제정치학 수업을 강의하시는 어느 교수께서 “너네가 진짜 대학생이라면 국제정치학을 공부하기에 앞서 자유론은 무조건 읽어야 한다.”고 몇 차례나 강조하셨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심지어 자유론을 읽고 그 내용에 대한 퀴즈도 보았다. 문제를 워낙 꼼꼼하게 출제하셨기 때문에 네 다섯 번 정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가장 쉬운 문제를 틀리고 말았다. ‘1859년 존 스튜어트 밀이 출간한 자유론의 원제목은 무엇인가?’ 문제가 이 정도로까지 지엽적으로 나올 것이라 생각도 못 했던 터라 그냥 자유를 뜻하는 ‘Liberty’를 적은 다음 제출하고 나서 책을 찾아보니 ‘On Liberty’였다. 비록 문제는 틀렸지만 덕분에 자유론이라는 말을 들으면 저절로 ‘On’이라는 전치사가 같이 떠오르게 되었다. 당시에는 독서습관도 별로 없었고, 철학적 개념에 대한 배경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꽤나 괴로웠지만 자유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됨과 동시에 우리가 지금 향유하고 있는 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 지금, 그 때 자유론을 강제로 읽힌 교수께 늘 고마운 마음이 든다.

먼저, 책의 저자인 존 스튜어트 밀(1806 – 1873)과 그의 아버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도록 하겠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유명한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의 아버지였던 제임스 밀은 사상적으로 같은 방향을 갔던 절친한 동료였다고 한다. 벤담과 제임스 밀은 인간의 모든 쾌락과 고통을 기준으로 효용을 측정하고 이를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했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쾌락을 마치 눈에 보이는 어떤 물질처럼 양적으로 환원했고, 이들을 저울에 매달았을 때 무거운 쪽이 더 중요한 쾌락이라고 보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주말에 쇼파에 누워 오락프로그램을 보는 것으로 얻게 되는 쾌락과 베토벤의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느끼는 쾌락은 양적으로 무게를 잴 수 있으며 이 둘 중에 자신에게 더 많은 쾌락을 주는 것을 인간이 선택하면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주입식 교육을 피하고 어떤 문제든지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을 하도록 부친께 양육받은 존 스튜어트 밀은 바로 자신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철학에 반기를 들었다. 밀은 세 살때 아버지에게서 그리스어를 배웠고, 여덟 살 때 라틴어를 배웠으며 열세 살 때 이미 경제학 공부를 시작했다. 열일곱 살이 되어서는 아버지가 일하던 동인도회사의 통신담당 조수로 임명되어 이 곳을 평생직장으로 삼게 된다. 스튜어트 밀은 벤담과 제임스 밀의 공리주의를 ‘돼지 철학의 소산’ 이라며 강력하게 비판한다. 쾌락을 양으로만 치부하며 단순히 물질적 쾌락만을 중요시한 벤담의 공리주의는 질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튜어트 밀은 벤담의 이러한 양적 공리주의를 수정하여 쾌락에는 물질적 쾌락 뿐만 아니라 정신적 쾌락도 존재하고, 정신적 쾌락은 물질적 쾌락을 앞선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그 유명한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라는 말이 스튜어트 밀의 펜 끝에서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스튜어트 밀은 공리주의자였지만 벤담과는 질적으로 다른 공리주의를 주창한 것이다.

자유론 소개하기로 해놓고 지금껏 공리주의만 주야장천 이야기해서 독자들께 죄송하다. 공리주의를 이렇게까지 길게 설명한 것은 자유론에 담긴 밀의 자유 사상의 출발점이 그의 독특한 ‘질적 공리주의’에 있기 때문이다. 밀은 쾌락의 질을 대단히 중요시했기 때문에 지적, 감정적, 도덕적 자기 발전을 행복의 기준으로 설정했고, 그렇게 때문에 우리 모두는 각자가 원하는 자신의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가 자유론을 통틀어서 가장 중요하게 설파하고 있는 개념이 개인, 즉 개별성(individuality)인 것은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밀이 인간의 개별성을 이토록 중요하게 이야기 한 까닭은 무엇일까? 밀은 인간이란 내면의 힘에 따라 스스로 자라나는 나무와 같다고 보았다. 이런 이유에서 모든 사람은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있으며 또 그것을 표현할 표현의 자유도 누린다. 이 같은 개별성이 존중되지 않으면 인간의 지적 발달과 도덕성은 타격을 입게 된다. 스스로가 자신의 선택에 따른 위험과 불확실성을 책임지는 한, 어느 누구로부터 신체적 정신적 박해를 받지 않고 각자 생각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인간에게는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지식 수준이 높고 삶의 경험이 많은 어떤 이가 그렇지 못한 다른 이에게 그를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에서 이런 저런 충고를 하고 때로는 강제로 명령을 하는 것도 잘못된 것인가? 마음대로 어떤 사람을 내버려 둔 결과 그 사람이 위험에 빠지게 되는 것보다는 미리 충고를 해 주어 그 사람이 겪을 위험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합당하고 일리 있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 밀은 인간은 누구나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내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지시나 명령에 의해 어쩔수 없이 올바른 방향을 가는 것이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 결정하고 행동하면서 때로는 오류에 부딪히는 것보다 더 못하다고 밀은 주장했다. 그가 이같이 말한 이유는 다름 아닌 ‘다양성’과 ‘독창성’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다양한 개성과 기발한 독창성을 자유롭게 가지게 될 때, 사회는 정적으로 멈추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한다고 밀은 믿었다. 또한 밀은 어떤 문제에 대해 자기 자신의 분명한 이성적 판단에 따라 결론내리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이성은 결코 더 이상 튼튼해질 수 없다고 보았다. 그렇지 않고 누군가의 강제력에 의해서 자꾸만 어떤 결정을 내린다면 인간의 이성이 약화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를 정리해보면 ‘최소한의 상식과 경험만 있으면 우리는 누구든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 각자의 생각대로 행동할 자유가 있다. 물론 자유로운 행동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오류나 시행착오는 스스로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그러한 인간의 개별성이 각자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밀이 또 한가지 중점적으로 이야기 한 부분은 ‘다수의 횡포’이다. 흔히 ‘자유’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힘이나 권력을 가진 누군가로부터의 해방’과 관련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인간의 역사가 그러했다. 전세계 어디서나 권력과 재력을 겸비한 통치자는 피지배자들을 압제하고 굴복시키려 했고 그들의 모든 자유(사상, 종교, 표현, 재산권 등)를 박탈하려고 했다. 멀리서 예를 찾을 필요도 없다. 반자유주의적, 봉건적, 유교적 사상을 토대로 백성들을 착취해 온 조선의 왕조가 그러했으며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고생 한 번 해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 자유민주주의를 헌법 속에서 정식으로 표방하는 자유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이제 과거처럼 무지막지하게 때로는 은밀하게 각인의 자유를 짓밟는 권력의 횡포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오늘날 누구도 이처럼 평안한 현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야흐로 진정 자유로운 세상에서 마음 편히 살고 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밀은 과거에 있었던 권력의 횡포보다 민주주의가 오히려 더 개인의 자유에 위협적일 수 있다고 무려 150년 전에 경고했다. 우리가 자유를 논할 때 이 책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면 민주주의가 되레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자기 양심에 따라 자기가 생각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도록 엄청난 무언의 압력을 가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분명 발전했다. 평범한 사람들도 보통 교육을 받고 정치적 자아를 가지게 되어 누구와도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개진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에 눈 뜨고, 의사를 피력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민주주의의 귀중한 토양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한 가지를 더 요구한다. 그것은 바로 나의 의견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내 생각이 언제든지 틀릴 수 있기 때문에 개별적인 인간으로서의 ‘나’가 중요한 만큼 타인과 그의 의견도 소중하다. 이러한 관용이 충족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발전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공감하듯 우리 사회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가끔씩 세상을 보면 ‘어쩌면 저렇게 자기확신과 독단에 빠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이롭기까지하다. 사회가 독단과 아집으로 가득차다 보니 타인의 독단을 꼬집는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그런 글들조차 독단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독선이 독선을 탓하는 상황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밀은 이처럼 독선에 갇힌 다수가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소수를 따돌리거나 탄압할 때 그 사회는 자유롭지 못하다고 보았다. 이른 바 ‘거리의 떼법’이나 ‘목소리 큰 사람’이 우리 사회의 전체 여론인 양 나라를 쥐고 흔들 때 자유는 심각하게 위협받는다. 문제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다수 대중의 힘을 빌려 군림하는 통치자는 사회의 여러가지 새로운 금기나 통설, 주류를 만들어내게 되고 조금이라도 그에 반하는 생각을 가지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소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더 이상 1인 독재가 개인의 삶을 파괴하지 않는다. 오히려 밀이 지적한대로 여론의 횡포가 개인의 목을 죄어오는 어떻게 보면 더 무시무시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여기에서 벗어나서 보다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이 시대가 가지고 있는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자칭 ‘민주적 시민’, ‘깨시민’이 가하는 무형의 압력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것인지 밀은 엄중히 경고한다. “개인의 사사로운 삶 구석구석에 침투해 마침내 그 영혼까지 통제할 정도”라고 표현했다. 말하자면 일종의 심리적 테러인 셈이다.

이쯤 보면 밀은 극단적 개별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자인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밀은 개인이 자연스럽게 타고나는 ‘사회적 감정’이라는 것을 동시에 중요시했다. 개별성이 중요한 만큼 사회성 또한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수차례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여러가지 예시를 들면서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독자들이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고 있다.

예를 들면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다리를 어떤 사람이 잘 모르고 건너려고 한다. 곧 무너질 것이 너무나도 분명한 다리인데 이 경우 행인에게 이를 알려서 그가 다리 건너는 것을 막아야 할까, 아니면 행인의 자유에 맡겨야 할까?’ 등의 질문을 통해 본인의 자유론을 재치있게 풀어나간다. 기사의 본문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고 오류도 책임져야 하므로 그대로 놔두는 것이 맞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이 경우 밀은 행인을 강제로 제지시키는 것이 오히려 자유의 원리에 부합된다고 주장한다.

어째서 그런걸까? 그것은 바로 자유라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가 다리가 무너져 죽고 싶은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따라서 개별성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밀은 자유의 한계는 필요하다고 보았다. 아직 지혜로운 사고와 판단을 할 수 없을 만큼 어린 미성년자들, 자신의 정신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마약 중독자들이나 알코올 중독자들에게는 타인의 자유가 보장받기 위해서라도 어쩔수 없이 제약된 자유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기사 몇 줄에 이 위대한 책을 다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지만 또 아쉽기도 하다. 어느 사상가의 저술이 다  마찬가지이듯 밀의 자유론 또한 자유의 측면에 대해 결코 완벽하게 기술한 책은 아니다. 여러 가지 토론도 촉발시켰고, 자유의 제약과 관련해서 많은 논란을 잉태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밀은 분명히 자유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평생 동안 고민한 진지한 사상가였고,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반드시 책을 통해 만나보아야 할 자유와 관련된 철학에 있어 입지전적인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마지막으로 자유론 본문 중의 인상깊은 문장을 하나 소개하며 글을 끝맺으려 한다.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반대로 그 한 사람이 나머지 모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것 만큼이나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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