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 탐방기] 일제 치하, 독립 투사들의 항쟁 혼을 추모하다

[서대문형무소 탐방기] 일제 치하, 독립 투사들의 항쟁 혼을 추모하다

Posted by 기자([email protected]) on in

민족의 명절 추석 연휴를 맞아 한국 근현대 독립투사들의 혼이 서려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다녀왔다.

서대문형무소는 서울 서대문구 독립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3호선 독립문역에서 내린 후 5번 출구로 나가면 도보로 1분 이내의 거리에 있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맑은 하늘에 밝게 빛나는 따스한 가을 햇살이 기자를 반기는 듯 했다. 민족의 명절을 맞아 가족, 친척, 연인들과 함께 서대문형무소를 찾은 인파들이 상당히 많았다. 개중에는 외국인들도 있었다.

시민들이 서대문형무소 외벽에 붙어있는 안내문을 읽고 있다. ⓒ문건 기자

시민들이 서대문형무소 외벽에 붙어있는 설명문을 읽고 있다. ⓒ문건 기자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개소되어 1945년 해방까지 한민족의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던 곳이다. 해방 이후에도 1987년까지 서울구치수로 이용되면서 민주화 운동 관련 인사들이 수감되는 등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실제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 곳이다.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지난 역사의 아픔과 극복을 교훈으로 삼고자 1998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개관하여 자주 독립정신과 자유를 기리는 교육의 현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관람료 3천원을 내고 입장을 하니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보안관 청사였다. 보안과 청사 지하로 내려가니 으슥한 느낌을 주는 지하고문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제 순사들이 독립 투사들을 취조했던 취조실 외에 물 고문실, 상자고문실, 손톱찌르기 고문실 등 일제의 폭력과 고문을 상징하는 각종 고문실이 보였다. 당시의 모습을 그저 재현해 놓았을 뿐인데도 고문도구와 고문방법의 끔직함, 잔혹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특히 성인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까 말까한 크기의 벽관에 직접 들어가서 애국지사들의 고통을 체험해보니 참으로 서글픈 마음과 동시에 자랑스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일제 순사가 독립투사에게 물고문을 가하는 장면을 재현한 물고문실. ⓒ문건 기자

일제 순사가 독립투사에게 물고문을 가하는 장면을 재현한 물고문실. ⓒ문건 기자

일제가 사용했던 상자고문. ⓒ문건 기자

일제가 사용했던 상자고문. ⓒ문건 기자

일제가 수감자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가두었던 벽관. ⓒ문건 기자

일제가 수감자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가두었던 벽관. ⓒ문건 기자

일본 순사들이 독립투사들을 취조했던 취조실. ⓒ문건 기자

일본 순사들이 독립투사들을 취조했던 취조실. ⓒ문건 기자

보안관 청사를 지나 다음으로 간 곳은 옥사였다. 일제는 수감된 독립 투사들을 한눈에 감시할 수 있도록 부채꼴 모양으로 옥사를 만들어 중간에 간수 감시대를 두었다. 옥사의 개수는 무려 수십개에 달했지만 일제에 항거한 독립 투사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 방이 좁았다고 한다. 이 많은 방에서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잠을 잘 수 없어 인원을 나누어 3시간씩 교대로 잠을 잤다고 하니 그 불편함이 오죽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많은 시민들이 서대문형무소 내부의 옥사를 구경하고 있다. ⓒ문건 기자

많은 시민들이 서대문형무소 내부의 옥사를 구경하고 있다. ⓒ문건 기자

투옥된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에 의해 강제노역을 당했던 공작사도 볼 수 있었다. 공작사에서는 영상을 통해 노역의 종류와 하루 일과 등을 확인할 수 있고, 이달의 독립운동가와 사진 찍기 코너 등을 통해 의미있는 체험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나서 다시 바깥으로 나오니 커다란 원형의 추모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추모비는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신 애국지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으로 이 곳에서 돌아가신 모든 선열들의 이름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이 곳에서 기자는 감사한 마음에 머리를 숙여 잠시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애국지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 ⓒ문건 기자

애국지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 ⓒ문건 기자

보안과 청사 건물 외벽에 걸려있는 커다란 태극기의 모습. ⓒ문건 기자

보안과 청사 건물 외벽에 걸려있는 커다란 태극기의 모습. ⓒ문건 기자

다음으로 스산한 느낌을 주는 사형장으로 향했다. 사형장은 일제가 1923년에 지은 목조건물로 서대문형무소를 비롯하여 전국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투옥된 애국지사들이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된 후 사형이 집행된 장소이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애국지사들이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원통함을 토해내며 통곡했다고 전해지는 ‘통곡의 미루나무’도 있었다. 그들의 목숨은 이슬처럼 사라졌을지언정 독립을 향한 숭고한 뜻과 혼은 여전히 살아숨쉬는 듯 했다.

사형장을 돌아다오니 다소 생소하게 생긴 건물이 있었다. 격벽장으로 불리는 시설인데 일종의 운동시설이라고 보면 된다. 격벽장은 운동 중인 수감자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없도록 여러 개의 벽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 관람코스는 여옥사였다. 여옥사는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여성들을 투옥하기 위해 일제가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일제는 1916년부터 1945년까지 여옥사를 증축 및 개축하면서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수감시켰다. 그 유명한 유관순 열사가 수감됐던 방도 있었다.

한민족이 당한 모진 수난과 고통을 너무나도 아프고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소라서 그런지 시종일관 안타까운 마음과 숙연한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그렇게 처참한 상황속에서도 자주 독립을 위한 불굴의 의지를 후손들에게 남기신 애국선열들에 대해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도 들었다. 중요한 역사적 교훈을 담고 있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돌아왔다.


아이모바일 관련 뉴스